2년간의 고된 여정 끝에, 드디어 내 첫 단독 저서가 세상에 나왔다. 출판사 실장님이 보내준 등기우편을 받아들 때, 내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포장을 뜯는 순간, 예상치 못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기대와 불안, 그리고 혼란이 뒤섞인 채 지난 2년간의 여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책을 펼치자 12명의 인터뷰이들의 얼굴이 스치듯 지나갔다.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활자로 새겨진 걸 보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동시에 가슴 한편에서는 불안감이 고개를 들었다. "과연 이 책이 그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기쁨과 불안이 교차하는 복잡한 심정에 나는 한동안 책을 내려놓지 못했다.
책에는 12인의 이야기가 실렸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은 분들과 마주 앉았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2년여의 시간 동안, 벤처캐피탈 업계는 끊임없이 변화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이들은 새로운 도전을 위해 업계를 떠났고, 또 다른 이는 해외로 거주지를 옮겼다. 이런 변화들로 인해 불가피하게 최종 인터뷰 대상을 12인으로 추려야 했다.
처음에는 이 변화가 아쉽고 안타깝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점차 이 불완전함이 오히려 벤처캐피탈 업계의 현주소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끊임없는 변화, 새로운 도전, 예측 불가능한 미래. 이것이야말로 이 업계의 본질이 아닐까. 이런 깨달음은 나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다.
원고를 쓰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매일 밤 컴퓨터 앞에 앉을 때마다 "이게 정말 의미 있는 일일까?"라는 의문이 끊임없이 들었다. 때로는 모니터 속 글자들이 춤을 추는 것 같아 눈을 비비기도 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수없이 밀려왔다.
그럴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운 건 주변 지인들의 따뜻한 응원이었다. "네가 쓰는 책이라면 꼭 읽어볼게."라는 친구의 말 한마디, "이런 책이 꼭 필요했어."라는 선배의 격려가 새벽까지 노트북 앞에 앉게 만들었다. 그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다는 책임감이 나를 밀어붙였다.
하지만 지금, 드디어 완성된 책을 손에 쥐고 보니 예상과는 전혀 다른 감정이 밀려왔다. 뿌듯함 대신 무거운 책임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마치 힘들게 등산을 해 정상에 도착했는데, 그곳에서 더 높고 가파른 봉우리가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인터뷰이들의 진솔한 이야기, 그들이 보여준 신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출판사가 무명의 나에게 걸어준 모험심도 가슴 깊이 와닿았다. '과연 나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전 공저 경험에서 얻은 쓰디쓴 교훈이 떠올랐다. 책은 결코 스스로 팔리지 않는다는 것. 단순히 출간했다고 해서 독자들이 알아서 찾아와 주겠지라는 생각은 순진한 착각에 불과했다. 유명 작가들과 달리, 아직 무명에 가까운 내 처지를 냉정히 직시해야 했다. 문득 에드가 앨런 포의 비극적 운명이 떠올랐다. 그의 뛰어난 재능도 생전에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런 불안감과 두려움은 나를 더욱 분발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행동하는 우둔함이 겉도는 지성보다 낫다"는 믿음을 가슴에 새기며, 책을 알리는 데 전력을 다하기로 결심했다. 링크드인, 페이스북, 다음채널, 개인웹사이트 등 내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채널에 출간을 알리면서도 이러한 노력들이 궁색하고 속물적으로 보일까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이것은 내 이야기가 아니라, 12명의 인터뷰이들의 소중한 경험과 통찰을 세상에 전하는 일이다.' 그렇게 주어진 모든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결심을 되새겼다. 마치 생애 마지막 사랑을 대하듯, 온 마음을 다해 이 책을 세상에 알리자고 말이다.
대대적인 홍보 없이 조용히 출간된 탓에, 첫 구매자들은 대부분 나를 아는 지인들이었다. 구매인증 사진을 보내오는 지인들을 보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대학 동기, 전 직장 동료, 심지어 책의 주제와는 거리가 먼 전업주부 친구까지. 그들의 손에 들린 내 책을 보며, 문득 깨달았다. 그들에게 이 책의 가치는 내용 자체보다는, 내가 쏟아부은 노력과 열정에 대한 지지와 격려였을 것이라고.
이 사실을 깨닫자 감사함과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이 밀려왔다. 마치 어깨 위에 큰 바위가 올려진 듯했다. 동시에 그 무게를 견디며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도 솟아났다. 이것이야말로 나를 믿어준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한 사람의 작가로서 지켜야 할 소명이다.
밤늦게 컴퓨터 앞에 앉아 다음 원고를 집필하면서도, 내 시선은 자꾸 서재 한켠에 꽂힌 첫 책으로 향한다. 그 책을 바라보며 나는 작은 소망을 품어본다. 이 책이 어떤 결과를 맺든, 언젠가 뒤돌아볼 때 '후회 없이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기를. 그것이야말로 내 첫 단독 저서에 대한,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진정한 예의일 것이다.
책등에 인쇄된 익숙하면서도 어색한 내 이름을 보며, 이제 막 시작된 이 여정의 다음 장을 상상해본다. 독자들의 반응, 예상치 못한 기회들, 새로운 도전들.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지만, 나는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묵묵히 나아가기로 한다.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듯, 아직은 멀고 희미해 보이는 꿈을 향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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